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말레이 해전 (문단 편집) === 영국 해군의 오판 === 현지에 있던 Z 함대 지휘관이었던 톰 필립스 제독은 [[더글라스 맥아더]] 장군을 비롯한 동남아 지역의 영미연합군 수뇌부와 미팅을 마친 상태였고, 2척의 전함으로는 어림도 없다는데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하지만 말레이시아로 침공해 들어오는 일본군의 공세를 저지하라는 지시를 받고, Z함대는 싱고라에 있을 것이라 예상된 일본 함대를 저지하기 위해 출항해야 했다. 다만 [[공군]]으로부터의 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제독은 상황을 너무나 낙관하고 있었다. 그는 [[일본군]]의 항공기가 대양에서 작전하지 않을 것이며, 설령 전투가 벌어진다 해도 함선들이 일본 항공기의 공격 정도는 무난히 막아낼수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었다.[* [[노르웨이 전역]], 진주만 공습 등의 전훈으로 대공포만으로는 공습을 막아내기 어렵다는 전훈은 얻었으나 일본의 장거리 대함공격 능력에 대해서 오판한것.] 사실 이러한 오판을 마냥 비난할수도 없는 것이, 말레이 해전 직전까지 "작전 항행 중에 항공기의 공습으로 침몰한 전함"은 단 한척도 없었다. 진주만 기습에서 보듯이 항공기에 의한 전함 공격이 가능하다는 것 까지는 인지하고 있었으나 원양에서 작전 항행할 경우 비행기의 항속거리 등에 따라 공습이 쉽지 않을 것이라 판단한 것이다. 그러나 상대는 [[A6M|항공기의 구조와 조종사의 안전을 희생해가면서까지]] 항속거리에 목숨을 건 데다가[* [[제로센]]의 정신나간 속력과 기동력, 항속거리를 얻기 위해 치른 대가는 '''기체의 내구도였다.''' 제로센은 설정된 최고 속력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오히려 다른 전투기들을 능가하는 가속력과 선회력을 보여줬지만, '''상정된 것 이상으로 속력을 올리면 풍압을 못 이기고 와장창 부서진다.'''] 이미 실전경험까지 풍부하게 장착한 일본. 제22항공전대는 명령에 따라 오전에 바로 정찰기를 출격시켜 Z함대를 찾기 시작했다. 정찰기는 영국 전함이 싱가포르에 정박중이라는 오보를 전했고, 일본 항공대는 그에 따라 폭탄을 장비하고 출격준비를 시작했다. 그러나 오후 3시에 I-65 잠수함이 Z함대를 발견하고는 위치를 보고했고, 항공대는 폭탄 무장을 어뢰로 교체하는데 시간을 낭비하느라 출격했을때는 이미 오후 7시가 넘은 시점이었다. 이때 Z함대는 항공 엄호 없이는 작전수행이 힘들 것이라는 해군 중장 필립스 제독의 판단에 따라 이미 싱고라 공격을 포기하고 [[싱가포르]]로 회항하는 중이었다. 한편 오후 5시 30분에 보고를 받은 오자와 중장은 중순양함 5척을 포함한 수뢰전대를 이끌고 Z함대의 요격에 나섰다. 그러나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고 스콜과 같은 날씨때문에 Z함대를 찾지 못하고 있었다. 밤이 되자 영국 함대는 일본 항공대를 피해 [[싱가포르]]로 귀항할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일본 항공대는 자국 중순양함 쵸카이를 프린스 오브 웨일스로 착각하고 조명탄을 발사하는 등 수색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때 일본 함대와 영국 함대의 상대거리는 약 10km 정도에 불과했다고 한다. 일본 항공대가 중순양함 쵸카이에 터트린 조명탄은 영국 함대에서도 육안으로 발견했다. 만약 조금만 더 거리가 가까웠으면 정말로 해전이 벌어졌을수도.] 10일, 일본군은 새벽이 밝자마자 정찰기를 띄워 Z함대를 찾기 시작하면서 발견되기도 전에 공격대를 미리 발진시켜놓고 영국 함대가 발견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전에 Z함대는 일본군 [[잠수함]] I-58에 의해 발각되었으나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었다. 이 무렵 Z함대는 쿠안탄 해안에 일본군 함대가 있다는 오보를 받았다. 필립스 중장은 무전을 받고는 보고 없이[* 위치가 밝혀질까봐 무선침묵을 지켰다고 한다.] 쿠안탄으로 향했고, 함대가 쿠안탄으로 이동하겠다는 보고를 받지 못한 사령부는 항공엄호를 보내지 않았다. 여기에 대해서 추가하자면 필립스 제독은 출항하기 전 10일 낮 동안 싱고라 상공에 전투기 엄호를 요청하였다. 그후 8일에 출항한 Z함대는 5시간후인 오후 10시 43분에 전문을 받았다. 그 내용은 10일에는 전투기에 의한 엄호는 불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여기에는 싱고라 상공이라는 말이 빠져있었다. 이를 본 필립스 제독은, 상황이 매우 나빠 싱고라 상공뿐만 아니라 어디에서든 항공엄호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항공엄호를 요청하지 않고 무선침묵을 지켰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도 말레이 반도의 영국 공군은 치명타를 입어서 지원이 거의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가 어뢰에 맞고 나서도 전투기의 엄호를 요청하지 않고 오히려 구축함 파견을 요청한 것을 볼때 가능성이 매우 높다. 오히려 교전 1시간후에 리펄스의 함장이 필립스 제독이 아직도 항공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을 뒤늦게 알고 경악하며 긴급히 영국 공군에 항공지원을 요청했지만 벌써 적절한 시기를 놓친후였다. 만약 항공요청이 제대로 되었다면 영국함대는 생존할 가능성이 있었다. 일본 해군 항공대는 항속거리 문제로 호위 전투기가 전혀 없이 베트남 사이공에서 공격기들만 출격했기 때문에, F2A 버팔로도 어떻게든 해볼 수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이 오인 정보로 인해 해안을 수색하는데 또다시 귀중한 시간을 허비한 Z함대는 쿠안탄에 일본 함대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퇴각했다. 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쿠안탄을 비행하던 일본군 정찰기가 그들을 발견한 뒤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